이민하, <물고기 연인>
책2019. 11. 21. 16:07이민하, <물고기 연인>
그는 지붕 위에 올라 녹색 루주를 바른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집에서 쫓겨난 남자
무슨 소용이에요 어머니,
벽 속의 열대어들을 꺼내 주는 칠판은 없는걸요
그는 오늘도 내가 준 지폐에 노란 매니큐어로 편지를 쓴다
넥타이를 매다 말고 나는 연인의 지느러미를 만져 준다
바닥까지 늘어뜨린 그의 지느러미에서
불에 타다 만 풀 냄새가 난다
지붕 위의 그가 불안해
지느러미를 잡아흔들어 방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편지에 쓴 철자법을 검사하고
스타킹처럼 달라붙는 교복 안에 그를 집어넣고 밀봉을 한다
해질녘 돌아와 보면
연인의 끈적한 타액이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다
혓바닥이 스친 벽마다 비린내가 슬고 있다
나는 그를 식탁 위에 올려 놓고 사료를 준다
그의 혀 끝에 달린 플러그를 내 입에 꽂고
그에게 이름을 붙여 준다
밤이면 잊어버리는 그의 발음을 입 안의 채찍으로 상기시킨다
연인은 밤새 오물오물 우우거린다
잠들기 전 나는 그의 혀와 지느러미를 둥글게 말아
내 몸 안에 밀봉을 한다
마지막 지퍼인 두 눈을 잠근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집에서 쫓겨난 남자는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위에 올라서있던 남자는 하늘과 제법 가까워진 상태로 녹색 루즈를 바른다. 녹색 루즈를 발라 초록빛이 감도는 그의 입술은 마치 푸른 하늘빛과 같아서 그만의 녹색 루즈 보호색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열대어들이 벽 속에 갇혀 마음껏 헤엄치지 못하고 있다. 자유를 잃은 열대어들을 꺼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칠판이 없었다. 칠판이 있었다면 칠판에 열대어들의 출구를 분필로 마음껏 그려줄 수 있었을 텐데, 벽 속의 열대어들을 꺼내주는 칠판은 없었다. 그는 오늘도 지붕 위에 올라 내가 준 동정어린 지폐에 노란 매니큐어로 편지를 쓸 뿐이었다. 내 암울한 기운이든 지폐를 더욱 밝게 만들기 위해서 햇빛보다 강렬한 노란 매니큐어로 편지를 쓴다. 그는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물고기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뻐끔뻐끔 거리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힘겹게 지느러미를 움직여 노란 매니큐어로 나에게 줄 지폐 편지를 쓴다. 지폐 편지에 검은 펜 대신 쓴 노란 매니큐어 빛깔이 눈을 어지럽혔다. 외출하기 전, 나는 넥타이를 매다 말고 그의 지느러미를 만져 준다. 바닥까지 늘어뜨린 그의 지느러미에서 불에 타다 만 풀 냄새가 난다. 불에 타기 전 그만의 싱그러운 풀 냄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주 고약한 탄내가 진동하는 그의 지느러미였다. 어쩌면 지붕 위에 오른 그가 뜨거운 햇빛에 그의 지느러미가 건조되고 결국에는 타버리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탄내를 풀풀 풍기는 그의 지느러미가 불안해 그의 지느러미를 잡아 흔들어 방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가 온종일 지붕 위에서 쓴 편지의 철자법을 검사하고 억지로 교복 안에 그를 집어넣고 밀봉한다. 학교에 가기 싫어했던 그를 교복 안에 집어넣는 나의 강압된 행동이었다. 그는 그저 교복에 밀봉된 상태로 입을 뻐끔뻐끔 거릴 뿐이었다. 어느덧 지쳐서 해질녘 돌아와 보면 그의 끈적한 타액이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었다. 그건 그가 눈물 대신 흘린 침이었다. 그의 혓바닥이 스친 벽마다 비린내가 슬고 있었다. 그가 흘린 침 냄새는 그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고약한 비린내를 풍기는 것이었다. 교복 안에 밀봉되었던 그가 헤집어 놓은 방의 풍경은 나의 죄책감을 옥죄게 만들었다. 그에게 미안한 나는 그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료를 줬다. 그리고 그의 혀끝에 달린 플러그를 내 입에 꽂고 미안함에 그에게 이름을 불러준다. 그에게 이름을 부르며 달래주는 나의 위로는 그가 해질녘까지 혼자 있으면서 느꼈던 외로움과 교복 안에 밀봉되어 고통스러웠던 그의 슬픔들을 달래주었다. 밤이면 쏟아지는 잠결이 자꾸만 잊어버리는 그의 발음을 입 안의 혀로 채찍질하며 상기시킨다. 그는 밤새 잠꼬대를 하며 오물오물 우우거린다. 잠들기 전 나는 외로움에 눈물처럼 침을 흘려 고통스러웠던 그의 혀와 나를 기다리며 햇빛에 타버려 상처 가득한 그의 지느러미를 둥글게 말아 소중히 내 몸 안에 밀봉한다. 안아주는 것 대신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는 그저 내 몸 안으로 고통스러웠던 그의 부위들을 밀봉하는 것뿐이었다. 마지막 지퍼인 눈을 감자 어둠이 나와 그를 감싸면서 안정시켰다. 물고기 연인들이 잠이 드는 밤은 편안함과 고요 속에서 서로의 고통을 점차 지워내고 있었다. 고르게 숨을 내뱉는 그의 입술이 뻐끔뻐끔 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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