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성, <아름다운 소리들>

2019. 11. 23. 00:23

청각의 기억들

손광성, <아름다운 소리들>

 

우리가 청각에 의존하여 온전히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을까? 우리는 귀로 듣기 전에 눈으로 먼저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고, 눈으로 담기 전에 코가 벌써 향기를 맡는다. 다각적으로 다가오는 세상에서 하나의 감각인 청각으로 세상을 다르게 마주한다면 평상시에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여 느끼지 못했던 세상의 본질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오직 소리만의 세상을 말이다.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눈이 먼저 인식하여 귀가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채갔을 뿐이다. 봄에는 유독 새소리가 화려하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축복소리가 귓가에 폭죽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겨울동안 웅크리던 꽃봉오리들이 봄이 되어 개화가 시작되면서 바람에 흩날려 꽃잎 부딪히는 소리가 화려하다. 여름에는 매미소리가 경관이다. 짝을 찾기 위해 애달프게 우는 매미소리는 물론 더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한숨소리, 도시에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식히는 분수대 소리와 산에는 폭포가 낙하하는 소리로 가득하다. 가을에는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발에 차여 낙엽 굴러가는 소리 또한 바쁘다. 겨울에 특히나 폭설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들어보면 빗소리보다 부드럽고 푹신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계절마다 소리가 다르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소리는 제철이 아니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p.232)’라고 말한다. 마치 봄에 겨울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보다 더 특별하다. 사람마다 각각 개성을 지니고 태어났는데 단연 눈에 띄는 점은 서로 다른 목소리이다. 저자는 가수들의 목소리를 예를 들으며 목소리가 가진 이미지를 그려본다. 뛰어난 목소리를 가진 가수들뿐 만아니라 일상 속 사람의 목소리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잠을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 내게 장난을 치며 좋아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말이다. 나와의 관계 속에서 특별한 사람의 목소리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우리에겐 자연의 소리, 사람의 소리 말고도 기억 속 소리도 존재한다. 실제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지만 내 머릿속에서 숨 쉬며 존재하는 기억 속 소리처럼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 기억 속 소리들을 예로 들었다. 다듬잇소리, 대장간의 해머 소리, 기관차 기적 소리(p.236)’ 나의 세대에서 들을 수 없는, 오직 저자의 세대에서 들을 수 있는 기억 속 소리이다. 내게도 기억 속 소리가 존재한다. 어릴 때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목소리, 우리 집 전화기로 전화해서 같이 놀자고 전화하던 친구의 목소리. 지금은 들을 수 없는, 이미 지나가버린 지금은 사라진, 그래서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그리운 소리들이(p.236)’ 나에게도 한때 있었다.

소리만큼 예민하고 감성적인 감각이 없다. 그래서 더욱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들은 노랫소리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시각에 의해 자국 남은 기억들은 어느새 미화되고, 후각과 미각으로 자리 잡은 맛과 냄새는 세월에 빗겨가 변형되지만 청각의 기억은 섬세하고 정확하다. 그래서 청각의 기억은 다시 돌이켜 들을 수 없어 너무도 그리운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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