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책2019. 11. 23. 00:26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중 <참회의 아픔 속에서>
이 글은 옥중생활을 견디면서 삶에 대한 회한, 무력감 끝내 분노와 같이 다양한 감정들이 응축되면서 표출되는 글이다. 저자는 옥중생활이란 삶에서 허용되던 자유가 끊어지면서 가혹하게 다스려지는 규율화 된, 형식적인 쳇바퀴 삶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일 하나 없이 반복적인 삶은 생명, 결실과 같은 동력(動力)을 모르고 오직 부동성(不動性)만을 알게 만든다. 이는 인간이라면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할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절망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계절의 윤회적인 삶을 저버리고 오직 슬픔의 계절만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이란 조그마한 쇠창살 문 사이로 어슴푸레 들어오는 회색빛일 뿐이다. 이렇게 옥중생활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밝음과 삶의 생동감을 앗아가는 공포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고통스러운 옥중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만다. 부모님은 저자의 사상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서 어머니의 죽음은 삶의 유한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또 3개월을 지나간다. 저자는 슬픔이 예민한 것이라고 말한다. 감정이 내포된 슬픔은 또한 성스러운 부분이다. 사소한 행동이 감동을 일으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슬픔은 예민하며 성스럽다. 감옥은 최하위의 인간들이 밀집된 공간으로 저자는 이 감옥 속에서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과거의 화려한 예술생활은 뒤로하고 저자는 지금 현재 처한 옥중생활을 스스로 건달생활로 표현하면서 타락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비관한다. 이러한 건달생활은 죄수라는 표면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아까운 재능과 청춘을 낭비하며 타인의 생은 안중에도 없는 오직 밀실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저자는 옥중생활에서 견뎌내는 분노, 모멸감, 애통, 비탄, 비애 끝에 고통의 희열을 느낀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시험해봄으로써 ‘앎’을 알게 된다. 이러한 앎이란 인간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이미 소유했다고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해탈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무일푼에 옥중생활을 견뎌내야 하지만 나중에 감옥을 나왔을 때 즐거운 마음이 오히려 낫다고 한다. 또한 18개월의 시간이 책을 읽기에 넉넉하다고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저자는 아무리 선하고 규범적인 종교, 도덕, 이성일지라도 옥중생활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저 저자는 옥중생활을 아무런 부정 없이 받아들이면서 글을 마무리 짓고 있다. 이 글은 단념적이며 체념적인 어투가 돋보이며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초월적인 의지가 살아있는 작품인 것 같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0) | 2019.11.23 |
---|---|
피천득, <인연> (0) | 2019.11.23 |
법정, <영혼의 모음> (0) | 2019.11.23 |
손광성, <아름다운 소리들> (0) | 2019.11.23 |
박민정, <미스 플라이트> (0) | 2019.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