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책2019. 11. 22. 19:01현실과 이상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나’는 1인 출판에 대한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출판사를 시작했지만 결국 3년을 버티다 말아먹었다. 그저 책에 대한 고고한 지식만을 가지고 현실적인 감각은 현저히 떨어지는 감상적인 인물이었다. ‘나’의 가치관은 늘 현실적인 ‘기’와 ‘장인’을 은근히 깔본다. ‘나’는 ‘장인’이 ‘10평방미터쯤 되고 거기에 2백 그램짜리 닭고기를 쌓아올린(p.45)’ 만큼의 금액을 날려버렸음에도 ‘책이랑 닭이랑 같냐(p.45)’며 기세 등등이었다. 또한 음식점 사장님들의 자서전을 내라는 ‘장인’의 말에 ‘나’는 “아뇨, 제 출판사에서는 ‘그런 건’ 안 냅니다.”(p.51)라고 말한다. ‘나’는 책에 대한 고상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장인’의 부탁을 거절한 것이었다.
‘기’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기의 계산법은 눈앞에 보이는 가장 현실적인 계산법이다. ‘10평방미터 방을 가득 채워야 할 만큼의 닭갈비를 팔아야 하는 돈(p.51)’, ‘닭이 6천 5백 마리(p.51)’처럼 말이다. ‘기’는 교수가 목표는 아니었지만 대학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싶어서 평생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지방까지 원서를 들고 간다. 하지만 애 낳을 생각이 있나, 당장 출산휴가 내고 그러면 곤란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 낙담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현실적인 타협으로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아야할지 ‘나’에게 묻기까지 한다. 감각적이고 이상적인 ‘나’와는 다르게 현실주의적인 ‘기’였다.
오로지 성공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장인’이었다. 고기 뷔페에 닭갈비 장사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는 ‘장인’은 자수성가했다. 혼자서 다 이루어 낸 것이다. 나름 ‘생활의 달인’의 모임에 속한 ‘장인’이었다. 책에 대한 ‘나’의 고고한 자존심과는 다르게 ‘장인’은 오로지 성공, 백퍼센트 팔리는 자서전을 ‘나’에게 추천한다. ‘돌아가신 엄마를 그렇게 괴롭혔던 것(p.53)’, ‘장모가 죽은 후에도 여러 애인과 동거인 들이 있었던 것(p.65)’, ‘10년 동안에는 장모의 기일에 납골당을 찾아가지 않았던 것(p.65)’을 ‘기’가 납득할만한 방법은 오직 우람하고 거대한 ‘북미산 잣나무 3미터짜리를 세우는 것(p.53)’으로 덮으려는 ‘장인’의 태도를 통해서 성공만을 쫓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자기 세계에 대한 충만과 고독, 왠지 모를 열패감이 뒤섞인(p.59)’ ‘나’와 ‘기’, 그리고 ‘장인’과는 다르게 ‘낸내’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으며 들었던 트라우마 ‘낸내’를 자신만의 독특한 이름으로 자신을 명명하고, 교습자들의 다양한 취미 생활을 배우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개성이라는 갈 수 없는 도시에 대해서 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동안만큼은 다 거기로 가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지 않겠냐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를 통해서 ‘낸내’가 그려내는 삶의 방식은 늘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낸내’가 ‘나’에게 준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보면 헨드릭스는 ‘히피와 자유로운 섹스와 불법 약물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가장 분절되고 분노에 찬 미국 국가를 연주(p.58)’하고 ‘자유와 프리섹스와 해방(p.58)’을 외치는데 이는 ‘낸내’가 추구하는 자유와 맞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낸내’의 자유는 사실 ‘나’가 염원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낸내’를 만날 때마다 ‘기’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나’의 이상적인 삶이 ‘낸내’의 삶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기’와의 결혼생활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즉, ‘나’와 ‘기’, ‘장인’ 그리고 ‘낸내’. 네 사람의 관계도를 통해서 복잡하게 얽힌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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